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스 MB (문단 편집) == 역사 == 육군의 기계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미군]]은 당시 [[BMW]]의 [[R-75]]를 대량 도입한 [[독일 국방군]]을 본받아 [[할리 데이비슨]]의 [[사이드카]]로 육군 전력을 기계화하려 하였으나, 곧 여러모로 더 뛰어난 [[4WD]] 자동차로 눈길을 돌렸다. 원래 해당 경차량 사업 자체는 1930년대부터 존재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상황이 급박해지자 사업에 박차를 가한 것이었다. 미군은 사업 계획에서 [[4WD]]에 공차중량은 1,300파운드(약 589kg)를 넘지 않을 것, 적재중량은 0.25톤, 승차정원 3명, 휠베이스는 1.9m 이하에 최고시속 80km/h, 윈드실드를 접어서 내릴 수 있을 것 등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요구 스펙 자체도 좀 무리한 편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차후 해당 사업에 선발된 모델들은 전부 일정 부분 요구 스펙을 어겼다. 공차중량의 경우 아예 미 전쟁부 측에서 처음에 내건 요구조건이 무리수였음을 인정하고 조건을 2,160파운드로 상향해 줬다.] 더욱이 75일 내에 70대의 시제차를 내라는 조건 때문에 사업 대상자 총 135개사 중 해당 사업에 가장 먼저 시제품을 내놓은 곳은 '아메리칸 밴텀' 뿐이었다. 그래서 이미 참여하고 있었으나 시제품 제작이 늦은 [[포드 모터 컴퍼니|포드]]나 아예 사업에 늦게 뛰어든 윌리스-오버랜드 쪽은 밴텀 쪽의 모델을 보고 이를 참고해서 만들었으며, 미국 전쟁부 쪽에서는 원하는 조건에 맞는 차량을 얻기 위해 이를 묵인하거나 오히려 조장했다. 그러나 밴텀 쪽의 반발로 결국 1940년에 이들 세 곳의 모델을 똑같이 각각 1,500대 씩 전부 납품받기로 결정한다. 이 때 납품된게 각각 윌리스의 MA와 포드의 GP,[* General Purpose의 약자.] 밴텀의 40 BRC였다. 그러나 생산성을 위해 모델을 단일화할 필요가 있었고, 1년여만인 1941년 후반기에 윌리스의 MA를 개량한 모델인 MB를 통합 모델로 선정한다. 윌리스 MB는 높은 엔진 출력이 호평받은 MA를 바탕으로 좋은 점이 많았던 포드 GP의 설계를 다수 반영한 개량형 모델이었다. 윌리스 MB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총 359,489대가 생산되었다. 종전 후 군용 모델의 생산은 멈추었고, 각 회사에서는 동일 차체를 민수용인 [[지프 CJ|CJ(Civilian Jeep)]] 모델로 개량해서 판매했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에선 민수용 모델을 바탕으로 만든 신형 차량을 생산, 도입했다. 이후 미군은 윌리스 MB를 1950년대까지 사용하고 1980년대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노후화된 지프 타입 차량들(M38, [[M151]])을 [[험비]]와 [[L-ATV]]로 교체했다. 후속 모델들은 윌리스 MB에 이어 현대 미군의 수송 차량과 다목적 [[소형전술차량]]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델로 계승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